미감은 재능이 아니다: AI 시대에 안목을 키우는 3가지 방법
1. 경쟁력은 '생성'보다 '판단'
AI로 누구나 쉽게 결과물을 만드는 시대, 이제는 좋은 것을 알아보는 ‘안목’이 경쟁력이 될 거예요.
매일 수많은 콘텐츠와 제품이 우리를 스쳐 가지만, 그중에서도 유독 눈길이 가는 것들이 있죠. 유난히 세련된 디자인이나, 아름답게 구조화된 보고서를 감각적으로 느끼지만,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드는지 설명하기는 상당히 어려워요. 막연히 좋다고 느끼는 것과 좋은 이유를 이해하고, 그 원리를 다른 작업에도 적용하는 것은 별개의 능력이기 때문이에요.
AI는 이제 문서와 이미지, 기획안까지 빠르게 만들어내지만, 무엇이 더 목적에 맞는지, 무엇을 수정하고 무엇을 살려야 하는지까지 자동으로 판단해 주는 것은 아니에요. 결과물을 만드는 데 드는 시간과 노력이 줄어들수록, 완성도를 판단하고 개선 방향을 결정하는 안목의 중요성은 커질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면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은 타고나는 걸까요?
2. 판단은 재능이 아니라 경험의 영역
인간이 무엇을 ‘아, 좋다’고 판단할 때는 미감과 안목이 바탕이 돼요. 미감(美感)이 아름다움을 직관적으로 느끼는 감각(Sense)이라면, 안목(眼目)은 무엇이 왜 좋은지 구별하고 알아볼 수 있는 능력(Judgment)에 가까워요.
최근 뛰어난 미감으로 화제가 된 코레일 매거진의 표지를 떠올려 볼게요. 각 도시의 풍경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건 미감에 가까워요. 하지만 수많은 풍경 중 어떤 장면을 선택하고, 어떻게 담아내야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여행을 떠나고 싶게 만들 수 있을까요? 단순히 아름다운 사진을 고르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요. 도시가 가진 매력을 발견하고, 이를 여행이라는 경험과 코레일이라는 브랜드의 가치로 연결하는 판단이 필요하죠. 바로 이 지점에서 미감은 안목으로 확장돼요.
그렇다면 안목은 타고나는 걸까요? 국제 학술지 Communications Biology에 실린 쌍둥이 연구는 흥미로운 단서를 제공해요. 이미지나 풍경, 얼굴 등 미적 가치를 평가할 때 유전적 요인이 끼치는 영향은 약 26~41% 정도에 그친다고 해요. 살면서 겪는 환경과 경험이 우리의 미감을 형성하는 데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치는 거죠. 쉬운 예로, 나라마다 미의 기준, 문화적 취향 등이 서로 다른 것처럼요.
3. 미감 좋은 사람들의 비밀
그러면 우리는 좋은 것을 알아보고, 적용할 수 있는 능력을 어떻게 길러야 할까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 온 세 인물의 사례를 통해 힌트를 얻어 볼게요.
① 하예진 - 넓게 보기 (내 취향 밖까지 수집하기)
하예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젠틀몬스터 초기 멤버로, 디저트 브랜드 '누데이크', 걸그룹 A2O LITE 등을 연달아 성공시키며 큰 화제가 됐어요. 패션, F&B, 음악까지 각기 다른 분야에서 통하는 결과물을 만들어냈죠.
그는 자신의 미감을 유지하는 비법으로 폭넓은 인풋을 꼽아요. 내가 좋아하는 것만 보는 게 아니라, 대중이 좋아하는 것, 비주류의 서브 컬쳐까지 살펴본다고 해요. 그리고 이들이 소비되는 이유를 끊임없이 질문하고 고민하고요. 알고리즘 속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에만 관심을 갖게 되는 요즘의 문화와는 사뭇 다르죠.
② 조니 아이브(Jony Ive) - 깊게 파기 (철학까지 깊게 파고들기)
조니 아이브는 애플의 아이맥, 아이팟, 아이폰 등을 디자인한 전설적인 인물이에요. 사실 그의 디자인은 놀라울 정도로 혁신적이지만, 독일의 가전 브랜드 브라운(Braun)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아이브가 브라운의 디자이너인 디터 람스(Dieter Rams)의 열렬한 팬이기 때문인데요.
흥미롭게도 사람들은 이 유사성을 단순한 모방보다 ‘디자인적 계승’으로 평가해요. 존경하는 디자이너의 미니멀리즘 철학을 스마트폰이라는 새로운 장르에 ‘구현’했다고 보기 때문이에요. 겉모습만 따라 하면 카피캣에 그치지만, 그 안에 담긴 의도와 철학을 이해한다면 ‘오마주’가 되겠죠. 결국, 레퍼런스를 깊이 파고드는 일은 자신만의 판단 기준을 만드는 과정이기도 해요.
③ 버질 아블로(Virgil Abloh) - 내 것으로 바꾸기 (딱 3%만)
루이비통 최초의 흑인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버질 아블로, 그는 세간의 천재로 불리지만 패션을 전문적으로 배워본 적이 없다고 해요. 아블로는 자신의 무기로 '3% 접근법'을 이야기해요. 오리지널에서 3%만 바꿔도 새로운 오리지널리티를 만들 수 있다는 거죠. 특히 나이키와 협업한 '더 텐(The Ten)'은 가장 역사적인 스니커즈 콜라보레이션으로 꼽혀요. 기존 스니커즈의 실루엣은 그대로 두고, 살짝의 해체주의 관점을 더한 것만으로 엄청난 품귀 현상을 일으켰죠.
3%의 법칙은 AI 시대에 가장 큰 인간의 무기가 될 것 같아요. AI가 97%를 만들어준다면, 나만의 3%를 더해야 결과물의 오리지널리티를 가질 수 있겠죠. 이를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레퍼런스를 접하고, 깊이 고민하는 시간이 필요할 거예요. 무엇을 남기고 어디를 바꿀지 아는 안목이 더욱 중요해질 테니까요.
AI는 수많은 결과물을 빠르게 만들어낼 수 있지만, 그중 무엇이 목적에 맞고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킬 가치가 있는지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에요. 안목이 있다는 건 단순히 취향이 좋다는 뜻이 아니라, 더 나은 선택을 내리고 그 선택에 이유를 부여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해요.
앞서 소개한 세 명의 인사들이 보여준 것처럼, 안목은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아요. 자꾸만 눈길이 가는 결과물, 피사체가 있다면 하나를 골라 왜 좋은지 생각해 보세요. 그 이유를 말로 설명하고 자신의 작업에 적용하는 작은 경험이 쌓일수록, AI가 내놓은 결과물 중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발전시킬지 결정하는 힘도 함께 자랄 거예요.